노을이 저물때까지

독후감-오늘 밤,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

해운대 탁선생 2022. 8. 28. 14:29

선행성 기억상실증,  즉, 하루의 기억이 수면을 취하고 나면 전부 사라져 어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 뇌질환 증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, 청춘 남녀의 우연성이 가미된 숙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, 줄거리는 이렇다.  이 병을 앓는 한 여고생이 같은 학교 한 남학생으로부터 사귀자는 우연한 제안을 받는다. 사실 이 남학생은 이 여학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같은 반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구하려고 나섰다가 이 여학생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오면 친구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제안에 그만 마음에도 없는 사랑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. 이 여학생에게 거절  당해 차이는 꼴을 보고 싶어 했던, 그래서  일부러 창피를 주려고 한 제안이었던 것인데, 그러나  이 소녀는 절대 자기를 좋아하지 안된다고  그런 조건으로  사귀자고 한다. 남학생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고백이라 아무래도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.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를 사랑한 상처를 남자에게  남기지 않으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.  시작은 그렇지만  가정사가 불우했던  이 남학생은 이 여학생과의 만남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고서는 진심으로 이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. 여학생도 하루가 지나고 나면 지워지는 기억들을 붙잡으려 매일 잠들기 전 이 남학생과의 만남을 자세하게 기록이나 사진으로 남겨서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기록들을 자세하게 읽고 살피므로  이를 근거로 오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었다. 매일 아침 일기들을 읽으면서 어제의 그 감정을 기록에 의존하여 새기고 엮어 깊은 사랑을 하루하루 키워 나갈 수 있었다. 물론 상식적이지 않아 작가의 역동적 창의력이 발휘된 것이지만 소설이니 그럴 수 있다고, 아니 더 소설적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. 그러다가 이 남학생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게다가 여학생은 이 나을 것 같지 않던 기억상실증이 기적처럼 나아버린다. 이제는 더 이상 기록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살지 않아도 되었으나 여학생의  기억 속에는 이 남학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. 주변 사람들은 이 여학생의 앞날을 위해 이 여학생이 갖고 있던 남학생의 기록들을 모두 숨기고 보여 주지 않지만 이 여학생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이 여학생만이 느끼는 사랑의 불씨가  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. 우연히 찾아낸 기록들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사랑의 잔영을 발견하고선 그 기록들을 전부 조각조각 이어 붙여 상상 속에서 과거의 그 사랑을 실존적으로 형상해 낸다. 비록 그 남학생이 죽고 없다 할지라도 더 애틋하고 더 간절하게 사랑을 꽃피우는 것이다. 기억이 있든 없든 한 때 품었던 그 사랑을 자기 가슴속에 남겨진 지극한 감정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.. 사랑이 품고 있는 기적 같은 힘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..

그렇다! 우리는 현실에 길들여져  사랑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한다. 돈과 명예를 위해서는 사랑은 언제나 버 줄 알아야 하는 게 요즘 우리 세태다. 경쟁을 최우선으로 달려가다 보니 사랑이란 가치는 그저 유행가나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. 사랑에는 이 세대를 녹여내고 삶을 아름답게 하는 힘이 있는데도 말이다.  사랑이란 모두가 품고 있는 희망이고 모두가 기댈 수 있는 안식처이다. 사랑과 가까워질수록 평화와 안정이 있지만  사랑과 멀어질수록 관계가 힘들어지고 험악해진다. 오늘 이 소설을 읽고서 사랑으로 선행적 기억상실증을 앓던 한 소녀의 삶에 생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아니 더욱 뜨거워지는 아름다운 한 편의 사랑 이야기로 행복한 하루였다...